박성희 - 범 내려온다 - 계변양류

이리 한참 노니난디
별주부가 그곳을
가만히 살펴보니
분명히 토끼가 있을듯하야
저그 앉은게 토생원 아니오
허고 부린다는 것이
워낙 수로만리를
아래턱으로만 밀고 와서
아래턱이 뻣뻣하야
토 자를
조금 늦추어 부린다는 것이
호생원아니요 허고
불러 노니
첩첩산중에서 호랑이가
생원 말 듣기는 처음이라
반겨듣고 내려오는디
범내려 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고
양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쑹덜쑹
꼬리는 잔뜩 한발이 넘고
동우 같은 앞다리
전동 같은 뒷다리
새 낫 같은 발톱으로
엄동설한 백설격으로
잔디뿌리 왕모래
좌르르르르르 헤치고
주홍 입 떡 벌리고
자래 앞에가 우뚝 서
홍앵앵앵 허는 소리
산천이 뒤덮고
땅이 툭 꺼지는듯
자래가 깜짝 놀래
목을 움치고 가만히 엎졌구나
호랑이가 내려와서 보니
아무것도 없고
말라비틀어진
쇠똥 같은 것 밖에는 없지
아니 이것이 대체 뭐여
아니 이것이 날 불렀나
올체 이것이 하나님 똥이로구나
하나님 똥을 먹으면
만병통치 헌다더라
그 억센 발톱으로
자라 복판을 콱 집고
먹기로 작정을 허니
자라가 겨우 입부리만 내어
자 우리 통성명 허십시다
호랑이가 깜짝 놀래
아이고
이것이 날더러 통성명을 허자고
오 나는 이 산중을 지키는
호생원이다
너는 명색이 무엇인고
예 저는 수국 전옥
주부 공신 사대손
별주부 자라라 하오
호랑이가 자라란 말을
반겨듣고 한번 놀아보는디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내 평생 원하기를
왕배탕이 원이더니
다행이 만났으니
맛 좋은 진미를 비여 먹어보자
자래가 기가 막혀
아이고 나 자래 아니오
그러면 니가 무엇이냐
나 두꺼비요
니가 두꺼비면 더욱 좋다
너를 산채로 불에 살라
술에 타 먹었으면
만병회춘 명약이라
두말 말고 먹자
으르르르르르르르르르 앙
자래가 기가 막혀 아이고
이 급살 맞일 놈이
동의보감을 살라서 먹었는지
먹기로만 드는구나
별주부가 생각허기를
예끼 내가 이왕에
저놈한테 죽을 바에야
마지막으로 해술이나
한 번 쓰고 죽을밖에
목을 길게 빼고
호랑이 앞으로
바짝바짝바짝바짝 달려들며
자 목 나가오 목 나가오 목 나가오
호랑이가 깜짝 놀래
이 조막만한 것이
목만 들락날락 허니
어떻게나 징그럽던지
그만 나오시오 그만 나와
이렇듯 나오다가는
하루 일천 오백 발이나 나오것소
어찌 그리 목이 들락날락 허시오
오 내 목
내력을 이를 테니 들어봐라
우리 수국 퇴락하야
천여칸 기와집을
내 솜씨로 올리다가
목으로 덜컥 떨어져
이 병신이 되았으나
명의더러 물은즉
호랑이 쓸개가 좋다 허기로
도랑귀신 잡어타고
호랑이 사냥을 나왔으니
니가 일점 호랑이냐
쓸개 한번 못 주것나
도리랑귀신 게 있느냐
비수검 드는 칼로
이 호랑이 배 갈라라
앞으로 바짝 기어들어
도리랑 도리랑
아 이 급살 맞을 자래란 놈도
하필이면 호랑이 거시기
거시기를 그냥 콱 물고
뺑 돌아노니
호랑이가 어떻게 아팠던지
저 전라도 해남
땅 끝 마을서 도망해서
아 숨 좀 쉴라고 탁 돌아다 본께
의주 압록강 였던가 보더라
거기서 제 손수 장담을 허는 말이
그놈 참 용맹이 무서운 놈이 롤세
아 나나 된 게
여기까지 살아 돌아왔지
다른 종놈 같았으면
영락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때여 별주부는
호랑이를 쫒은 후에
곰곰이 생각허니
호랑이라 허는 것은
산중에 영물이라
내 눈에 와서 보일 진데
내 정성이 부족함이로구나
목욕재계 정히 허고
산신제를 한번 지내보는디
계변양류
늘어진 가지 하나를
앞니로 자끈 꺾어 내여
진토를 쓸어버리고
암석으로 제판삼고
낙엽으로 면지를 깔고
산과 목실을 주어다가
방위가려서 갈라놓고
은어 한 마리 잡어 내어
어동육서로 받쳐놓고
석하의 배례허여
지성으로 독축을 헌다
유세차 갑신 유월
갑진삭 임자 초칠일
남해 수궁 별주부 자래
감소고우 상천일월성신
후토명산신령전
지성으로 비나니다
용왕이 우연 득병하야
선의도사 문병후에
토끼간이 낫사오니
중산 토끼 한 마리를
허급 허옵심을
상사 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