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 배수(背水)의 진(陣)

내 뺨을 어루만지는
싸늘한 공기
현재시각은
해가 저문 밤 12시
등뒤에 흐르는 땀
칠흑과 같은 밤
까딱 방심하다가는
순십간에 일패도지
아군식량의 지원은
저 뒷길로부터
적진과의 거리는
불과 5킬로미터
적막 속에서
긴장을 배가시키는
낡아빠진 선풍기의
전동모터
구름 한 점 없이
정말 한적한 밤하늘에
새하얀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군용부츠의
투박한 코끝을
묵묵히 바라보던 그 순간
팔목의 시계
바로 그 시간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 그리고 소음
이제는 행운을 빌며
마지막 전투를
시작할 때가 온 것 같군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무조건 싸워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무조건 싸워
깊이 빨아 뿜는
담배연기
또 화약의 짙은 향기
저 멀리서부터
진동해오는 적의
소름끼치는 움직임
전군이 숨죽인 가운데
미리 정찰 중이던
이름 모를 한 병사가
핏덩어리로
곤죽이 되어버린 하반신을
마치 토핑이 된 피자와 같았던
질질 끌어오던
그 모습을 보고
이제 바로 내 코
앞으로 다가올
비극적 참사
당연지사
내 볼을 스친
124 grain 9mm NATO
이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구닥다리 레이더
상대적으로 형편없이 열악한
또 조악한
빌어먹을 아군의 무기고
이제 모든 잡념을 버리고
냉정하게 생각을 해봐
적군과의 병력 차는 하늘과 땅 차
아군의 생존율은 절대 0할
절대로 승리를 논하지 못할 상황
이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한가지

이곳이 바로 최후의 마지노 선
마치 도미노와 같이
쓰러지는 아군을 보며
12쌍의 뇌세포를 통해
전달되는 극도의 공포
계속해서 불을 뿜는 철포
애초부터 체급이 맞지 않는
미스매치
어느새 젖어버린 옷과
내 이마에 맺힌
끈적한 액체를 통해
비로소 뼈저리게
실감한 예상이 됐었던 패배
허나 포기라는 이름의
나약한 뒷걸음은 최고의 죄악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지금
자신의 존재에 모든 것을 걸고
장진 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한 한 발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무조건 싸워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무조건 싸워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무조건 싸워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뒤에는 강
앞에는 적
무조건 싸워

주석